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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 2014.09.03(수) 08:5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23)
거짓말쟁이 회장의 다섯 가지 유형

거짓말에 관한 어린 시절 추억 두 가지.

예닐곱 살 더운 여름날, 이모가 우리 집에 들렀다. 사줄 테니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얘기해 보란다. 나는 형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종류대로 외쳤다. 다 듣고 난 이모. 생각만 해도 즐거웠지 않느냐고 한다. ‘뻥’이란다. 아무리 노처녀 신분이었지만 어린 조카에게 할 장난인가. 하지만 이모 말대로 잠깐은 행복했다.

초등 3학년 때 백일장에 나갔다. 지역신문에서 주최하는 꽤 큰 규모의 글짓기 대회였다. ‘즐거운 우리집’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난데없이 최우수작에 선정돼서 주최한 신문에도 실린단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거짓말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집은 즐겁지 않았다. 집에 수영장도 없었다. 혼날 각오를 하고 신문 나오는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버지가 칭찬해 주셨다. 거짓말이 아니라 ‘창의력’으로 본 것이다. 글이 반드시 논픽션일 필요가 없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회사에서는 다르다.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자신을 얕잡아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무시당하는 건 참지 못한다. 정작 회장 본인들은 어떨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양심의 가책이란 없다. 전쟁터와 같은 경영 현장에서 정직만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을 옹호하는 말들은 참 많다. 플라톤은 거짓말쟁이야말로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영국의 처칠도 “전쟁에서 진실은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항상 거짓말이라는 보디가드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우리 사회는 기업인의 거짓말에 관대하다.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 응당 ‘검토하고 있군.’하고 새겨듣는다. 도리어 정직한 기업인이 낯설다.

거짓말의 종류도 다채롭다.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인가 아닌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인가 아닌가, 나쁜 의도인가 선한 뜻인가에 따라 거짓말을 분류할 수 있다.

회장의 거짓말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1. 배려형 거짓말

자신에게 이익 되는 건 없다. 직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희망’은 가장 위대한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눈 여겨 보고 있는 거 알지?’, ‘당신만 믿네.’, ‘힘든 고비는 넘겼다. 희망이 보인다.’ 이런 거짓말에는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애정이 묻어있다. 한국인 특유의 인정이 스며있다. 플라시보 효과도 있다. ‘거짓말도 잘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는 속담에 해당하는 흰색 거짓말이다.

2. 습관형 거짓말

자신이나 직원 모두에게 이익도 피해도 없다. 대개는 하는 줄도 모르고 한다.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회장이 입에 달고 사는 ‘회사가 위기다.’도 그중 하나. ‘언제 밥 한번 먹자.’ ‘모두가 여러분 덕분이다.’ 등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진실만 말하면 삭막하다. 양념 같은 거짓말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는 법. 과하면 ‘양치기 회장’이 될 수 있다. 사심이 없듯이 색깔도 없다.

3. 과시형 거짓말

자신에게는 이익이고 직원에게 피해는 없다. 관심을 끌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도 숨어 있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자기보호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다 해봤다.’, ‘누구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나는 돈보다 성취가 목적이다.’ 한마디로 허풍 떠는 말이다. 영웅담도 같은 맥락. 이런 회장은 아첨과 맞장구를 좋아한다. 허세에 근거를 꿰맞춰주면 특급 참모가 된다. 스스로 절제하면 애교 수준으로 봐줄 수 있는 노란 거짓말이다.

4. 위선형 거짓말

속일 의도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직원에게 손해를 입힌다.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회사보다는 가정이 우선이다.’, ‘고객의 이익이 회사의 이익이다.’ 회장 자신은 직원과 고객을 위해 일한다고 착각한다.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다. 약간의 창작능력도 필요하다. 되풀이하다 보면 언행불일치와 일구이언의 문제를 낳고, 직원들의 실망과 불신으로 이어져 가식적인 회장으로 자리 잡는다. 시커먼 거짓말이다.

5. 범죄형 거짓말

자신은 이익이지만 직원과 사회에 피해를 준다. 작게는 약속을 어기는 것에서부터 분식회계 등 진실을 조작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작심하고 하는 거짓말이다. 계획된 거짓말이라는 점에서 앞엣것들과 다르다. 이런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자기증식 과정을 거치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결국 사회적 비난은 물론, 처벌 대상이 된다. 일명 새빨간 거짓말이다.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지 않는 한 회장님의 거짓말은 쭉 계속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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