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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이자 여자인 회장과 동거하는 법

  • 2014.09.04(목) 08:3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24)
알고 보면 회장도 한 인간일 뿐

“본시 여성인데 남성성이 강해져 중성화된 사람은?”
“아줌마!”

싱겁다. 임직원과의 대화 자리에서 한 회장의 첫 질문이다.


“본시 남성인데 여성성이 강해져 중성화된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답은 ‘회장’이란다.

회장의 ‘중성론’은?

개인과 법인의 차이에서 시작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다. 법인은 사람이 만든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감정이 있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법인에는 사람의 감정을 개입시켜선 안 된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영하지만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회장은 왜 중성이어야 하는가?

회장은 법인을 책임지고 있고, 법인은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다. 사람이 아닌 법인을 사람의 감정으로 운영해선 안 된다. 따라서 회장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아니 남성이면서 여성이어야 한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고루 충만해야 한다. 초식남인 동시에 육식녀여야 하는 것이 회장의 자리다.

회장은 여성성을 갖는다.
수시로 의심한다. 시험하려고 한다. 세심 꼼꼼하다. 애정에 목마르다. 내 편이 되어주길 바란다.

회장은 남성성도 강하다.
세게 보이고 싶어 한다. 성과가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한다. 도대체 해결책이 뭐냐고 묻는다. 이유 없이 화를 낸다.

‘아수라 백작’처럼 전혀 다른 사람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회장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양반 미친 것 아냐? 이 사람에게 맞추는 건 미친 짓이야!’ 마치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같이 사는 ‘결혼은 미친 짓’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회장은 그래서 회장이다. 거문고와 비파가 어우러져야 금슬이 깨지지 않는 법.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구비하지 못한 회장은 일찍이 사라졌다. 현재 남아 있는 회장은 모두 아수라 백작들이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약간의 수고만 감수하면 된다.

1. 인정하는 게 시작이다.

회장 안에는 고양이도 살고 개도 산다. 개는 기분 나쁠 때 으르렁 댄다. 고양이는 그 반대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때는 웃고, 어떤 때는 짜증내는 게 회장이다. 뿐만 아니라 또 어떤 때는 짬뽕도 된다. 햇볕은 쨍쨍한데 비가 오는 ‘호랑이 장가가는 날’처럼. 회장은 그런 인종이다.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같이 살 수 있다.

2. 관심 갖고 봐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XX 성염색체가 더 왕성하게 활동하는지, 어느 때에 XY 성염색체가 발동되는지 관찰해야 한다. 정성들여 보면 보인다. 변덕에도 나름 일관성은 있다. 유심히 보면 얼마든지 예측 가능하다. 상황 파악이 된다.

3. 그때그때 맞춰 살아야 한다.

별 수 없다. 화성에 가면 화성인으로, 금성에 갈 때에는 금성인 문법으로 살아야 한다. 결과가 중요한 때는 결과를 챙기고, 공감이 필요한 때는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괴감 느낄 필요 없다. 하루는 화성인, 또 다른 하루는 금성인으로 커밍아웃하며 사는 게 직장인이니까.

4. 결국 한 인간에 충실하면 된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 회장도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갖고 산다. 주눅들 것 없이, 눈치 볼 필요 없이 어여삐 여기자. 시시때때로 조증과 울증을 넘나드는 회장, 소심과 대범이 맥락 없이 교차하는 회장을 측은지심으로 대하자. 그도 평범하고 외로운 한 사람이다.

수필가 E.B 화이트는 “인류나 인간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에 대해 써라.”고 했다. 회장이 어떤 인종인지, 일반론은 의미 없다. 당신의 회장, 그 한 사람이 중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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