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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톡톡]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자전거 경영’

  • 2014.09.07(일) 09:00

술 마신 다음 날엔 ‘해장 자전거’
두려움 없는 승부근성으로 혁신

자전거 페달을 얼마나 굴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살갗이 까지면서 짓물렀다. 물처럼 맑은 고름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고 싶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지난 2002년 독일 ‘트랜스알프스 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했다. 7박8일에 걸쳐 열린 이 대회에서 그는 자전거로 해발 3000m가 넘는 알프스 연봉 18개를 넘었다. 650㎞에 달하는 이 ‘죽음의 랠리’에서 숱한 참가자들이 중도에 꿈을 꺾는다.


구 회장 역시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기 싫었다. 상처투성인 채로 페달을 계속 밟았다. 죽을 힘을 다했다. 이레째 밤이 지나 그는 마침내 완주선을 통과했다. ‘동양인 최초 트랜스 알프스 완주자’가 됐다.

 

▲지난 2002년 여름휴가를 맞아 독일 트랜스알프스 산악자전거 대회에 참가해 자전거를 끌고 있는 구자열 LS그룹 회장.


그의 자전거 사랑은 운명과도 같다. 네살박이 어린 시절 세발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려놓은 후 그는 자전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중학교 시절 그는 서울 중구 약수동 집과 종로구 계동에 있던 학교를 자전거로 통학했다.


서울고 2학년 때는 자전거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택시에 치인 것. 머리뼈가 함몰될 정도로 큰 사고였다. 6시간에 걸쳐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받았다. 노심초사했던 아버지(구평회 E1 명예회장)는 수술이 무사히 끝나자 아들을 사지(死地)로 몰고 간 자전거를 집어 던졌다. 자전거 금지령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가족들 눈을 피해 ‘애마’(愛馬)에 올랐다. 자전거 페달을 밟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감싸며 스쳐갔다. 사고 순간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구 회장은 요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자전거로 출근한다. 서울 논현동 집에서 경기도 안양 LS타워까지 40㎞가 넘는 거리다. 자전거로 1시간 30분 걸린다. 최고 기록은 1시간 5분이다. 자전거로 출근하면서 상념을 즐긴다.


주말에도 그는 자전거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자전거를 타고 청계산을 ‘날라’ 다닌다.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해장 자전거’로 술기운을 씻는다. 그는 “비즈니스 모임이 많아 알코올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데 자전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한다.


‘자전거 박물관’을 세우고자하는 바람도 차근차근 실천하고 있다. 그는 클래식 자전거를 수집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100년 넘은 골동품 자전거 5대를 네덜란드와 독일 등지에서 들여오기도 했다. 자전거 마니아 소문이 나면서 구 회장은 사이클인들의 추대로 지난 2009년부터는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국내에 들여 온 골동품 자전거. (좌)지난 1875년 네덜란드에서 제작. (우)지난 1887년 독일에서 제작. (제공=관세청 서울본부세관)

 

구 회장은 자전거에서 경영과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살갗이 물러 터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목표를 달성하듯 회사 역시 뼈를 깎는 혁신을 거듭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두려움 없는 승부 근성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전거를 끌고 타면서 힘든 고지를 넘고 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힘든 일을 정면으로 승부할 때 세상사는 맛을 느낍니다.”

 

■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고(故)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195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78년 LG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1980년 뉴욕지사, 1992년 일본지역본부 이사를 거쳐 1995년에는 우리투자증권(당시 LG투자증권)으로 옮겨 국제부문 총괄임원을 지냈다. 2003년 LS그룹이 LG그룹과 분리된 후 LS전선 부회장을 거쳐 2008년부터는 회장을 맡았다. 작년 1월1일부터는 사촌형인 구자홍 전 LS그룹 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아 LS그룹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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