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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긍은 가지만 본질은 아닌 임영록의 해명

  • 2014.09.10(수) 15:49

IT 無知가 부른 재앙, 경영진 간 의사소통의 문제

금융감독당국의 중징계(문책경고) 방침에 반발하는 임영록 KB금융 회장이 연일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정보통신기술(IT) 부문에 관한 이해가 낮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임 회장의 소명과 해명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룹의 최고 경영자로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먼저 지난 5일 저녁 임영록 회장이 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한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한 소명과 해명을 다시 보자.

◊ 주전산기 문제가 본질이 아닌 이유

▲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이 지난 5일에 이어 10일 오후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금강원의 중징계 결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첫째는 시스템 오류와 관련한 사항이다. 유닉스 시스템과 관련한 ‘1억 건의 작업 과정에서 400만 건의 오류가 발생했고, 1700개의 시스템 다운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임 회장은 “다운 현상과 오류는 거래 테스트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런 테스트를 거쳐 오류를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스트 오류에 관해서도 “은행장, 감사, 이사회를 통해 정확히 보고했다”고 해명했다.

이 사항은 임 회장의 설명을 대체로 수긍할 수 있다. 임 회장의 말대로 전산 테스트라는 개념은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그 결괏값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오류 비율과 다운 현상이 통상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환한 사례에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범위 안에 있는지, 아니면 이를 벗어났는지가 관건이다.

임 회장의 설명이 더 설득력을 얻으려면 벤치마크테스트 과정에서 나온 결괏값에 관한 평가를 전제해야 한다. 설사 예상보다 오류가 많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기술진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또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사항이 은행장과 감사, 이사회에 정확히 보고되고, 충분히 논의한 후 결정을 했다면 문제는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임 회장의 설명은 큰 맥락에선 맞지만, 완전히 클리어 됐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설명한 교체 비용도 비슷하다. 임 회장은 “IBM 제시가격이 올라갔다는 것은 애초 제시 가격은 자체 서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시스템을 완전히 확충하려면 소프트웨어, 저장장치 등이 필요한데 이를 더하면 올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등 전산 부문은 스펙을 어떻게 갖추느냐에 따라 가격이 들쭉날쭉하다. 조그만 개인용 컴퓨터를 하나 조립해도 그렇다.

결국, 이 문제는 경영 판단이 중요한 사안이라고 봐야 한다. 가변성이 많은 사항인 만큼 좀 더 분명한 자료를 제시해야 잘잘못을 따질 수 있기도 하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더라도 경영 판단 상 길게 보면서 선(先) 투자를 할 수도 있고, 지금의 문제만을 해결할 수 있다. 모두 비용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주전산기와 관련해 임 회장이 언론에 해명한 내용은 이 두 가지다. 이 해명들은 큰 방향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론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세부 사항이 정확히 공개된 적도 없거니와 공개하는 것이 맞는다는 확신도 없다. 경영전략 등 주관적인 요인에 따라 달리 해석할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 경영진 간 의사소통이 본질이다

따라서 금융그룹의 최고 경영자와 최대 계열사인 은행의 행장, 이사회 간 의사소통이 무너졌다는 데서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한 전산 부문 관계자들의 다툼은 그동안 치열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은행과 증권사가 주전산기를 교체한 과정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났던 문제들이다.

그래서 지난 3일, 한 은행장이 언급한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3년 국내 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유닉스 전환을 추진했다. 당시 메인프레임만 하던 직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처리 용량과 안정성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 하지만 증권업계가 먼저 도입했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추진했다. 그랬더니 IBM에서 가격을 깎아주겠다고 제안하더라. 더 일찍 했어야지 하고 거부했다.”

KB금융의 경영 분쟁은 주전산기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이 본질이 아닌 이유다. 애초부터 다툼이 많은 사안은 그만큼 경영진 간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유닉스 측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IBM 측 말을 들으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은 것이 이번 주전산기 교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그래서 더욱 그룹의 경영진은 중심을 잘 잡고 추진했어야 했던 사안이다.

IT 부문에 무지한 경영진이 화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경영진이 IT 부문의 전문가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나, 어느 정도 맥락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으면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번 주전산기 교체의 과정을 보면 실무진에서 치열하게 논쟁할만한 사항들이 최고 경영진들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해 주전산기 교체의 필요성과 의미, 앞으로 경영 전략상 필요성 등에 관해 경영진 간 깊이 있는 논의가 있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쟁점이 많고 미래를 위한 투자 성격이 강한 전산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의 공유다. 론스타가 경영했던 외환은행에선 왜 그동안 전산 부문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는지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 그럴듯한 해명, 그러나 억누를 수 없는 찜찜함

임 회장은 해명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에서 “주전산기 관련 부분은 내부 프로세스를 거쳐서 의사결정을 거쳐 충분히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터인데, 5월 19일 금감원에 검사를 의뢰하면서 오랫동안 KB금융그룹이 혼란에 빠져 안타깝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것이 본질이다.

금감원에 검사를 의뢰한 것이 혼란의 시작이지만, 이미 한 달여 전부터 내부적으로 문제를 수습할 시간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 기간 KB금융그룹 최고 경영자로서 해야 할 역할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임 회장이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받는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사전에 수습해야 할 책무를 지닌 그룹 회장으로서 그것을 다하지 못한 책임’일 것이다.

이건호 행장이 마지막 폭로로 언급한 인사개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임 회장의 소명인 “인사 개입이 아니라 인사 협의”라는 취지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당사자(이건호 행장)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 이런 사안의 특성이다. 인사 협의를 하기 위한 두 사람 간의 신뢰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봐야 하고, 결국 이것이 KB 사태의 본질인 셈이다.

오늘(10일) 임영록 회장은 다시 기사회견을 자청해 조목조목 소명과 해명을 이어갔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12일 임 회장에 대한 문책경고(중징계)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게다가 금융위의 결정도 금감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면서 임 회장의 마음이 급해졌을 것은 자명하다.

이날 임 회장은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주전산기 교체는 확정된 사항이 아니다”는 취지로 다시 한 발을 빼면서 해명에 급급했다. ‘주전산기 교체가 확정되지 않았으니 KB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한 것이 없고, 의사결정 행위나 결과 등이 전혀 결정된 것이 없는데 이에 중대한 책임을 지라는 금감원장의 결정은 타당하지 않다’는 취지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찜찜한 구석이 더 많다.

KB 사태는 낙하산 문제라는 것을 부인하기가 어렵게 흐르고 있다. 뿌리가 다른 두 낙하산이 사실상 하나의 금융그룹에서 서열이 분명치 않아 생긴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IT와 관련한 무지까지 겹쳐 서로가 전쟁을 벌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방아쇠는 당겨졌다. 실제로 많은 KB 금융인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경영진 간 지휘 문제나 신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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