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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12조 폭풍감세의 비밀

  • 2014.10.01(수) 08:45

정부는 '전년대비' 계산..국회엔 '기준선' 보고
세수 효과 추계 '들쭉날쭉'..납세자는 혼란만 가중

지난 달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이 최근 국회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연말까지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새로운 세금 조항들이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법개정안에 첨부된 비용추계서를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올해 세법 개정으로 인해 내년부터 얼마의 세수입이 더 들어오고 나가는지 추정한 문서인데요. 당초 정부의 발표치와 국회에 제출한 수치가 완전히 다릅니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을 통해 5년간 5680억원의 세수가 증가한다고 발표했지만, 국회에는 10조원이 넘는 감세 내역서가 들어있습니다. 단순 오류라고 하기엔 세수의 차이가 너무 큰데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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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 방법이 다르다

 

정부는 세법개정안에 따른 세수 효과를 두 번에 걸쳐 발표합니다. 8월 초에 언론에 먼저 공개해 국민 의견을 수렴한 후, 9월 말에 국회에 확정된 법안을 제출하는데요. 여기서 세수 효과를 추정하는 계산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언론에는 전년대비 세수 효과를 발표하고, 국회에는 현 시점을 기준으로 향후 얼마의 세수가 들어오는지 다시 계산해서 보냅니다. 만약 연간 100억원짜리 감세 조항을 만들었다면 내년에만 1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고 발표한 후, 국회에는 5년간 500억원을 깎아준다고 다시 보고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고무줄 공장에서 기계를 바꿔서 매년 200만원씩 새로운 매출이 발생한다고 가정합니다. 이 공장에서 기계를 바꾼 효과는 5년간 200만원일까요. 아니면 1000만원일까요. 상식적으로는 1000만원이 실제 매출에 가까운 수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전년대비 수치를 발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수의 변동 규모를 파악하기 쉽고, 수치 자체도 적게 보이도록 만들어줍니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증세와 감세의 기로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세수 중립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세정책의 중기적인 실제 세수효과를 보여주기에는 무리가 있고, 방대한 조세감면 항목들도 반영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국회가 정부에 따로 세수추계 자료를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알고보면 12조 감세

 

세법개정안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은 정부가 과연 얼마의 세금을 더 가져가느냐일 것입니다. 국회에 제출된 세법개정안 비용추계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5년간 소득세로 5904억원, 법인세로 3560억원을 더 걷을 계획입니다. 당초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소득세 760억원, 법인세 3060억원)보다 각각 5000억원, 500억원 정도 늘어난 수치입니다.

 

소득세와 법인세는 정부의 기존 발표보다 실제로 걷을 세수가 더 많은 셈이죠. 그렇다고 정부가 증세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전년대비 방식을 사용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기존 세법개정안에 드러나지 않은 조세감면 항목에선 엄청난 규모의 세수를 깎아주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조세감면 규정을 연장하거나 신설하면서 무려 20조7479억원의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습니다. 원래 올해 말에 예정대로 끝냈다면 대부분 추가로 걷을 수 있는 세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기존 발표에선 조세감면의 연장 규모는 세수 추계에서 '0'으로 잡혔습니다. 실제 일몰 연장 외에 순수하게 세법 개정으로 깎아주는 세금은 2조원 정도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담뱃값 인상으로는 개별소비세와 각종 부담금 등으로 5년간 13조원의 세수를 충당합니다. 당초 정부가 발표한 연간 2조8000억원의 담배 세수 효과에 비해 5배 정도 늘어난 규모입니다. 모든 세법개정안의 세수효과를 합치면 약 12조원의 감세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계산 방식의 미세한 차이가 10조원이 넘는 세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셈입니다.

 

◇ 납세자는 어리둥절

 

결국 정부는 전년대비 세수를 선호하는데, 국회에선 기준선 방식의 세수 효과를 추정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두 번의 세수 추계를 하고 있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세법개정안의 비용추계서를 요구하는데, 매년 요구사항이 조금씩 달라진다"며 "세수 추계 규모도 매번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전혀 다른 수치를 바라보는 납세자들은 어떨까요. 세법개정안의 실제 세수 효과만 알면 되는데, 굳이 헷갈리게 계산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 때문에 국회예산정책처에서는 정부 세법개정안의 세수 효과를 다시 분석한 보고서를 내는 실정이고, 여기서 또 다른 수치가 등장합니다.

 

지난해 세법개정안에서도 정부의 발표치는 2조4900억원 증세였다가 국회에는 2조500억원으로 수정해 제출했고, 예산정책처에서는 다시 3조1600억원 감세라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어떤 수치를 믿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납세자의 혼란을 막으려면 가장 정확한 하나의 세수 추계만 내놓으면 됩니다. 세수추계 계산 방식을 공급자 위주가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면 간단합니다. 하지만 기재부와 국회예산정책처 사이의 세수 칸막이는 여전히 높아 보입니다. 국민들은 올해도 역시 세 개의 다른 세수추계 결과를 받아봐야 할 형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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