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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권오준은 베트남 비자금을 정말 몰랐을까

  • 2015.03.12(목) 16:56

권 회장 뒤늦게 진노.."도대체 얼마나 썩었길래"
보고체계·윤리경영 '구멍'..본사 차원 재감사

"도대체 얼마나 썩은 겁니까. 내가 얼마나 더 뒤치다꺼리를 해야 합니까."

 

지난 달 말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열린 포스코그룹 긴급 임원회의는 돌덩이처럼 무거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온화한 성품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불같이 화를 냈고 임원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작년 7월, 포스코건설은 자체 감사를 통해 베트남 현지법인 임원들이 비자금을 조성한 것을 적발해 내부적으로 조치를 마쳤다. 하지만 이 일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외부로 알려지자 권 회장은 진노(瞋怒)했다.

 

그렇다면 권 회장은 과연 지난 8개월여 동안 포스코건설 비자금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일까.

 

 

◇ 봉합된 '리베이트 사건' 불거진 이유는

 

8개월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포스코건설 감사실은 자사 베트남 법인이 수 년 간 현지의 하도급 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하도급 대금을 부풀리는 방법을 통해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을 확인했다. 이 일을 적발한 포스코건설의 감사는 포스코 본사 홍보임원을 거쳐 2012년부터 건설 상임감사를 맡아온 김동만 전무다.

 

포스코건설은 감사 결과 조성된 비자금이 임원 A씨와 B씨 등을 통해 2009~2012년 4년간 발주처에 매달 리베이트 형식으로 지급된 것으로 파악했다. 현지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조성한 것일뿐 관련 임직원이 개인적으로 비자금을 유용한 비위행위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포스코건설은 이 같은 결론에 따라 비자금 관련 사건을 사법당국 등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부 조치를 통해 마무리지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전달한 해당 임원 2명은 지난해 8월 보직 해임했고 지난 1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비상근 계약직으로 대기발령했다.

 

하지만 이 일이 뒤늦게 외부로 알려지면서 포스코건설 뿐 아니라 포스코 본체까지 곤욕을 치르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자체적인 재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특히 이완구 국무총리까지 사실관계 확인 조사를 지시하고 나서면서 검찰도 수사에 나섰다.

 

▲ 포스코건설은 지난 2월8일 베트남 호치민 남부에 위치한 동나이성 저우자이에서 '호치민~저우자이 고속도로' 5공구 개통식을 가졌다. 포스코건설은 1995년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세우며 진출해 플랜트, 토목, 신도시, 건축 등 다양한 건설분야 공사를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도로는 외국 건설사 중 가장 많은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사진: 포스코건설)
 

◇ 감사보고 축소됐나, 알고도 덮었나

 

이미 내부적으로 수습된 일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것은 사건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혹 때문이다.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고 사후조치 역시 미흡해 사건이 축소·은폐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며 판이 커졌다.

 

조성된 비자금은 많게는 300억원에 이르고 또 이 자금의 용처도 리베이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부자들의 횡령이나 그룹 고위층 및 이를 통해 당시 정권 실세에까지 흘러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감사에 대한 보고는 황태현 포스코건설 사장은 물론 권오준 포스코 회장까지 올라간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권 회장이 최근 임원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해 강하게 질책한 것을 액면 그대로 본다면 권 회장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 수준까지는 알지 못했던 걸로 해석된다.

 

만일 그가 전모를 몰랐다면 감사가 미흡했거나 보고과정에서 사실관계가 축소됐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 이 사건은 이달 초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에 배정돼 수사가 진행중이다. 검찰은 우선 리베이트 규모와 조성 수단 등을 밝혀내고 한편으로 해당 임원 주변의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최고위층 책임론..건설 IPO에도 악재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포스코 최고위층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비자금 조성은 과거의 일이지만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권오준 회장은 그룹의 최고경영자로서, 황태현 사장은 보고 및 사후조치를 총괄하는 해당 계열사 CEO로서 책임을 피할 수 어렵다.

 

재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가 '윤리경영'을 표방하며 투명한 기업 이미지 구축에 전념해온 만큼 비자금과 관련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내외적 타격은 '라면 상무' 사건 못지 않을 것"이라며 "그룹 윗선까지 연루된다면 권 회장의 구조조정 추진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현재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포스코건설의 기업공개(IPO)에도 이번 일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상장 심사 과정에서 본사 및 해외 법인 회계 관련한 내용들이 더욱 중점적으로 다뤄질 수 있고, 공모가격 산정에서도 불투명성이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IPO 주관업무 담당자는 "포스코건설이 현재 사우디 국부펀드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어 당장 상장에 나서기는 어렵지만, 상장 추진이 가시화되는 시점과 비자금 관련 수사결과 발표 시점이 맞물릴 경우 계획했던 기업공개가 순조롭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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