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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화려한 실패’ 창문세의 교훈

  • 2015.05.18(월) 15:15

비즈니스워치 창간 2주년 특별기획
<좋은기업> [확 풀자!] 증권부문
파생상품 양도소득세 ‘도마’…누더기 세제도 불만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 생활 발전을 위해 국민들의 소득 일부분을 국가에 납부하는 돈.’

 

어린이 백과사전에 나오는 세금에 대한 정의다. 정부는 국민 생활 발전이라는 '좋은' 뜻에서 세금을 거둬들인다. 그러나 세금 중에는 소위 '나쁜 세금'도 있다. 나쁜 세금의 비근한 예로는 창문세가 거론된다. 창문세는 말 그대로 건물의 창문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1303년 프랑스에서 도입됐다 사라진 창문세는 1696년 영국에서 다시 부활했다.

 

그렇다면 영국 정부는 창문세를 거둬서 잘 썼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사람들은 창문세를 내지 않기 위해 있던 창문들을 없앴다. 창문을 거의 달지 않은 건물도 생겨났다. 결국 영국 정부는 원하던 세수를 얻지 못했고 영국인들은 한동안 건물에 햇빛이 들지 않는 불편을 감수하며 살았다. 창문세가 대표적인 나쁜 세금이 된 이유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수년째 이런 나쁜 세금에 대한 원성이 이어지고 있다.

 

 

◇ 파생상품 양도세, 한 입 모아 "연기"

 

최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한 세미나 자리에서 창문세에 대해 언급했다. 잘못된 조세정책이 자본시장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한다는 것이 논지였다. 증권업계의 대표적인 창문세로 내년부터 도입될 예정인 파생상품 양도소득세가 지목된다. 이에 대한 업계의 우려는 자못 심각하다.

 

정부는 금융상품간 과세형평 차원에서 부과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세금을 더 걷으려다 시장이 죽고 세수마저 줄어들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파생상품 시장 위축은 현물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등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

 

업계에서는 소득과세의 경우 당해 소득은 당해 과세문제로 매듭지어야 하지만 한해 이익이 있고 다음해나 이전해의 손실을 합쳐 이익이 없을 경우에도 소득과세가 되는 점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증권업계는 증권거래세 인하 역시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증권거래세율의 기본세율은 0.5%로 탄력세율을 적용해 유가증권 시장에 0.15%(농특세 0.15% 추가 부과), 코스닥에 대해 0.3%가 적용되고 있지만 선진국 주요 증시는 물론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경쟁국가들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 아시아 주요국가 거래세 현황(출처:자본시장연구원)

 

시장에서는 증권거래세를 낮추면 거래가 오히려 증가해 전체 세수가 늘어난다는 당위성을 내세운다. 조세연구에 따르면 증권거래세를 0.1%포인트 인하하면 거래량 50% 증가시 교육세까지 포함해 68억원의 세수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중국은 증권거래세 인하로 세수가 늘었고 스웨덴은 증권거래세를 도입했다 다시 폐지했다. 

 

국내에서도 우정사업본부에 대해 기존에 한시적으로 증권거래세 면제 혜택을 주다 지난 2013년부터 0.3%의 증권거래세를 매긴 후 국가·지자체의 차익거래 금액이 급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세수도 줄어든 사례가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차익거래는 2012년 19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60억원으로 급감했고 전체 차익거래 시장 역시 30조원에서 6조원으로 5분의 1토막이 났다.

 

◇ 앞뒤 자르고 혜택은 찔금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세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요구도 빗발친다. 정부로서는 시장 활성화를 위한 불가피한 세제 혜택에 인색한 것은 물론 각각의 상품에 대해 우후죽순으로 세금이 매겨지면서 시장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업계에서 주시하고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경우 원활한 도입과 정착을 위해서는 비과세를 기본으로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혜택이 필수로 지목된다. 그러나 세수를 감안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당장의 수입이 줄어드는 세제 혜택을 충분히 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는 각종 펀드에서도 세금 혜택이 짜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나마 세제 혜택이 들어간 펀드의 경우 기한이 한시적인 일몰제이거나 가입대상이 크게 제한되면서 시장에서 찬밥 대접을 받는 게 현실이다.

 

소득공제장기펀드만해도 연말정산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쏠쏠한 혜택에도 가입 대상이 연간 총 급여 5000만원 이하로 제한되며 1년간 2500억원 안팎의 자금 유입에 그쳤다. 출시 당시만 해도 4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이란 기대와는 영 딴판인 결과다.

 

시장에서는 5000만원 이하의 직장인들의 경우 가입여력 자체가 크지 않았던 것을 주된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지난 2013년 출시된 재형저축 펀드 역시 비과세 혜택이 부여됐지만 근로소득과 종합소득금액이 각각 5000만원 이하와 3500만원 이하로 제한되면서 실패 사례로 남아 있다.

 

◇ 해외상품 등 '입맛대로' 세제 원성

 

해외 상품에 대한 과세 불균형 문제 역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당국은 여전히 모르쇠다. 일례로 국내 증시에서 해외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수하면 배당소득세를 내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된다. 반면 해외 증시에 상장돼 있는 ETF을 직접 매수하거나 역외펀드에 가입하면 양도소득세(20%)가 부과되는 대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는 빠진다.

 

세율만 보면 해외 증시가 불리해 보이지만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이 넘는 투자자라면 해외 증시에서 직접 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고액자산가들이 국내에서 만든 해외 상품에서 등을 돌리는 이유다.

 

해외 주식형 펀드에 대한 종합과세나 손실에 대한 과세 문제도 지목된다. 해외주식형 펀드는 손실이 발생해도 오히려 세금을 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펀드운용에서 손실이 나더라도 환차익이 조금이라도 발생했다면 이에 대해서는 세금을 떼는 구조다. 장부 가격 상 이익이 나서 세금을 낸 후 이듬해 시황 급변으로 손실이 나버려도 직전연도에 된 세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국내 펀드 역시 주식·채권 혼합형의 경우 주식 쪽에서 손실이 크게 났더라도 채권수익이 일부 나면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 임에도 세금을 내는 기형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오윤 한양대 교수는 "금융소비계층인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금융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에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며 "투자의 중립성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도 최근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 자본시장과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 제도는 복잡하고 수시로 바뀌다보니 누더기가 됐다"며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헷갈릴 지경"이라고 질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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