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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슬금슬금 느는 미분양

  • 2015.08.17(월) 16:50

 

# 다시 증가세로

 

미분양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지난 봄에는 박근혜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2만가구대까지 떨어져 미분양 공포에서 해방되는 듯 했습니다만 다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과 5~6년 전 건설업계는 미분양 쓰나미에 휩쓸려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10대 건설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월드건설 동일토건 신창건설 신성건설 신일기업 등 주택전문 업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터라 미분양 증가가 심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 얼마나 늘어날까

 

 

지난 6월말 기준 미분양 아파트는 3만4068가구로 집계됐습니다. 전달보다 21.1%(5926가구) 늘어난 물량입니다.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 3월 2만가구대(2만8897가구)로 떨어진 이후 4월(2만8093가구), 5월(2만8142가구)까지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이는 2002년(2만4923가구) 이후 최소 물량입니다.

 

업계에서는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미분양이 하반기부터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공급물량이 넘쳐나기 때문인데요.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3분기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6만~8만 가구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7월에는 최근 3년 평균의 2.6배인 5만4000가구가 공급됐고 3분기에는 12만가구가 분양될 예정이기 때문에 미분양은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 통계를 볼까요
 

 

2006년 말 7만3772가구였던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2007년 말 11만2254가구, 2009년 3월에는 16만5641가구까지 늘었습니다. 당시 평균 분양가가 3억원 안팎이었음을 감안하면 약 50조원에 해당하는 재고가 쌓인 셈입니다. 이후 정부가 여러 차례 미분양 대책을 내놓고 업체들도 공급 물량을 줄이면서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말 12만3297가구
2010년말 8만8706가구
2011년말 6만9807가구
2012년말 7만4835가구
2013년말 6만1091가구
2014년말 4만379가구

 

# 왜 늘어나는 거죠

 

 

이경자 애널리스트는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는 이유를 '공급과잉과 가격인상'에서 찾습니다. 건설사가 미착공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 물량을 털어낼 마지막 기회라는 위기감에 분양가를 올리면서 공급을 밀어내는데 따른 수급 불일치라는 설명입니다.

 

대표적인 게 현대건설이 지난 5월 분양한 경기도 광주 '힐스테이트 태전'입니다. 이 단지는 금융위기 이후 사업성이 악화되면서 분양을 못하다가 시장이 살아난 틈을 타고 분양시장에 나왔는데요. 한꺼번에 3146가구를 분양했습니다. 순위별 청약에서 모집인원을 채워 선방한 것처럼 보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딴판이었습니다. 6월말 현재 1250가구가 미분양된 겁니다.

 

힐스테이트 태전이 고전한 이유는 대규모 물량인 데다 분양가가 비쌌기 때문입니다. 전용면적 84㎡ 기준층 기준, 태전 힐스테이트의 분양가는 3억9270만원으로 인접 단지인 아이파크(3억6560만원), e편한세상(3억3000만원)보다 3000만~6000만원 비싼 게 패인으로 작용한거죠.

 

# 건설사들의 '근·자·감?'

 

 

건설사들이 이렇게 가격을 높여 물량을 쏟아낼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등에 업은 게 큰 힘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전부터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실물 경기를 살리기 위해 얼어붙은 주택시장을 살리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에서였죠.

 

집값 상승시기에 도입했던 분양가상한제 등의 규제를 대부분 없앴고, 주택기금을 통한 내 집 마련용 저리 대출을 확대하고 청약제도를 완화해 주택 예비수요자들을 분양시장으로 대거 끌어들였습니다. 예전에는 2년(수도권 기준)이 걸렸던 1순위 청약자격이 1년으로 줄어들면서 전국의 1순위자 수는 1000만명을 훌쩍 넘은 상황입니다. 수요가 확보됐다고 판단한 건설사들이 호기를 놓칠 리 없죠.

 

전세난도 건설사들의 '근거있는 자신감'의 배경입니다. 전셋값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집값의 70~80%를 쉽게 넘어설 정도로 오르자 전세 갈아타기에 지친 세입자들도 내 집 마련으로 눈을 돌리게 된 거죠. '서울 전셋값 정도면 살 수 있다'는 분양 판촉 문구가 자주 눈에 띄는 이유기도 합니다.

 

# 미분양 쓰나미 재연될까

 

 

당장은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미분양 사태는 빚어지지 않을 전망입니다. 전셋값은 점점 높아지고, 전세 물량은 줄어들고, 금리는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쏟아내는 물량을 소화해낼 시장 수요가 어느 정도는 받쳐 준다는 겁니다.

 

하지만 계속 공급이 쏟아진다면 문제가 됩니다. 1~2년 이내에 분양 물량을 예상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의 '주택 공급 인허가 실적'이라는 통계가 있는데요. 인허가 실적은 2013년 44만가구, 2014년 51만5000가구를 기록했고요, 올해는 상반기 중 벌써 30만가구를 채운 상탭니다.

 

재작년 정부가 예측한 향후 10년간 주택의 적정 공급량이 연간 39만가구인데요. 이를 훨씬 넘는 물량이 공급되고 있는 거죠. 당장은 문제가 안되겠지만 건설사들이 자발적으로 공급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미분양 쓰나미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겁니다.

 

☞ 미분양은 '호환마마'

 

 

미분양은 건설업체에게는 ‘재고(在庫)’에 해당합니다.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재고(在庫)'죠. 재고가 쌓이면 자금 압박을 받게 되고 결국 부도로 이어집니다. '재고누적→자금압박→사업부도'라는 시나리오의 출발점이 재고입니다.

 

미분양은 1차적으로 건설사에게 치명적 타격을 줍니다. 미분양이 쌓이면 '돈맥경화'로 사업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지속되면 워크아웃→법정관리→청산 절차를 밟게 됩니다. 수천 억 원의 여유자금을 가진 대형 건설사도 미착공PF로 인해 휘청거리는 게 현실입니다.  

 

건설사들이 미분양 타개책으로 할인 판매에 나서면 기존 계약자와 갈등을 빚게 됩니다. ‘나도 똑같이 깎아달라’는 요구인데요. 할인 판매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국민정서법’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부에게도 부담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미분양 대책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취득세를 깎아주고 양도세를 완화해줬으며, 결국엔 미분양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을 동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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