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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ers' Insight] 세제실의 쇼는 누가 기획했나

  • 2015.10.19(월) 17:00

▲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조세정책심의회' 현판식을 가졌다.(사진=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展示行政)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3년째 국가 세수입에 구멍이 난 터라 국가재정의 근간이 되는 조세정책을 고민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이지만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는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지난 15일에 발족한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조세정책심의회'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산물이다. 기재부는 세제실 산하에 조세정책 및 세법개정을 총괄하고 조정하기 위한 회의체로 '조세정책심의회'를 출범시키고 별도의 회의실도 만들고, 세금을 들여 현판까지 달았다.


정책의 응집력을 키우기 위해 총괄과 조정기능이 필요하다는 데에 '격하게'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 회의체의 실체를 알고 나서는 '격하게' 부정할 수 밖에 없다.

 

조세정책심의회는 기재부 세제실장이 주재하고 세제실 국장 4명과 세제실 과장 4명이 참여하는 회의다. 거창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세제실 내부회의다. 회의체가 지향하는 조세정책 및 세법개정의 총괄 및 조정도 원래부터 세제실 본연의 업무다. 그냥 세제실장이 국장과 과장을 불러다 회의를 하면 되는 일을 현판까지 달면서 쇼를 한 셈이다.

 

조세정책심의회 개소식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의 전직 세제실장들에게 물어봤다. 세제실장은 국장들이나 과장들과 회의를 얼마나 자주 할까. 정답은 매일하고, 또 수시로 한다. 물론 현직 세제실장 역시 그러하다.

 

매일 아침 국장들과 회의를 하고, 필요에 따라 과장들까지 포함된 간부회의를 수시로 연다. 세제개편안 준비가 한창일 시기에는 회의 빈도가 더 높아진다. 조세정책과 분석, 법령운용 부문으로 국한하고자 한다면 세제실장의 권한으로 언제든지 해당 국과장들만 모아서 할 수도 있다. 이번 회의체에서 의도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선의의 비판자'(devil's advocate) 제도를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세제실장이 마음만 먹으면 이런 회의체 없이도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제실은 굳이 왜 이런 회의체를 만들어 냈을까. 세제실 내부에서는 '윗선'에 대한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정치인 장관과 그 위의 청와대다. 사실 자신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세제실장이 스스로 이런 형식적인 회의체를 만들었을리 만무하다.

 

"위에서 어떻게든 (정부가) 고생하고 있다는 걸 (국민에게) 알리라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 떨어진 일은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걸 홍보하는 일"이라는 세제실 한 간부의 푸념은 최근 있었던 잇따른 쇼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직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취재과정에서 확인됐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조세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청와대의 디테일한 개입은 반복적으로 계속됐다. 2013년의 연말정산 파동은 청와대의 재가를 받은 정책이었고, 최근 세제실 조직개편도 청와대 작품이라는 전언이다. 실세로 불리는 친박 정치인이 장관으로 앉으면서 좀 덜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청와대는 과장급 인사에까지 개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세제실의 또 다른 간부는 "청와대에서 떨어지는 민원이 너무 많아서 실무를 볼 시간이 없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누가 지휘하든 제대로 된 정책이 만들어진다면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윗선 개입의 결과가 좋지 않은데다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말정산 파동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거위깃털'발언이 기름을 부었지만, 뒷정리는 세제실이 해야 했다. 총괄조정기능을 강화하고 회의체까지 만드는 등의 이번 세제실 조직개편안도 청와대 작품이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세제실의 몫이다.

 

돌이켜 보면 세제실이 정책홍보나 총괄의 가욋일에 신경쓰게 된 것은 '증세없는 세수확충'이라는 말도 안되는 전제 때문이다. 관련 공무원들이 골머리를 앓다가 나온 결론이 결국 이 정도 수준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국민을 보살피고, 도움이 되는 정책은 민심이 먼저 알아차린다. 각 부처를 들락거리며 정부정책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언론도 검증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을 만들면 홍보는 저절로 될 일이다. 홍보는 홍보과나 대변인실에 맡기고, 세제실은 조세정책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으면 한다. 윗선이 알아야 할 게 있다. 목표를 제대로 부여하고, 부처와 공무원들이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남은 임기, 국민과 공무원 양쪽으로부터 그나마 욕을 덜 먹는 길이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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