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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다시 달리자!]혁신, 또 혁신하라

  • 2015.10.21(수) 14:45

한국 제조업 성장성 한계 직면
과감한 인수합병 등 변신 필요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안한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에 힘입어 부활하고 있는 일본기업과 가격과 기술 모두 턱 밑까지 추격한 중국기업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부단한 혁신을 통해 위기를 퀀텀 점프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주요 기업들의 전략과 사업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

 

"마치 경제가 스스로 힘을 잃은 것과 같은 느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는 글로벌투자은행 HSBC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 경제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과거 빠른 산업화에 힙입은 고도성장기를 지나며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이 최근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해외언론의 이같은 평가를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전세계적인 무역침체, 특히 주력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둔화는 한국 기업들에게 위기로 다가온 상황이다. 여기에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중국, 다시 부활하고 있는 일본과의 경쟁에서도 버텨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기업보다 앞선 길을 걸었던 해외기업들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 적신호 켜진 한국 제조업

 

지난 3분기 증권가의 예상치보다 많은 7조3000억원의 잠정 영업이익을 내놓은 삼성전자의 분위기는 예상과 정반대다. '깜짝 실적'에 대한 흥분보다 4분기, 또 내년 전망에 대한 우려가 더 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이 잘 안보인다"고 말한다. 3분기 실적 역시 환율효과가 적지 않았던 만큼 본연의 경쟁력이 좋아지며 기록한 실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현대자동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국내외 판매감소 등의 부진에서 조금 탈피한 모습이지만 낙관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3분기 실적도 재고정리 등의 비용이 늘어나며 큰 폭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규모 부실에 신음하고 있는 중공업·조선·철강 등도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실제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은 성장성이나 수익성 등의 지표에서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한국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2013년 5.0%, 2014년에는 4.8%로 낮아지고 있는 반면 일본은 각각 6.8%, 7.2%로 높아졌다. 중국기업들은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전경련은 “한국기업은 내수업종 위주로 매출성장이 확대된 반면 수출주도 업종의 매출성장은 둔화됐다”며 “한국 주력 수출산업군에 포함된 업종은 중국의 성장둔화, 엔저로 인한 일본과의 경쟁심화 등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 생존해법 ① 혁신 

 

한국 제조업들도 해외의 다양한 혁신사례를 참고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기존 사업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과감한 사업재편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장기불황에서 살아남은 일본 기업들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실제 최근 LG그룹은 월례 임원회의에서 후지필름의 사례를 공유하기도 했다. 과거 코닥, 아그파 등과 필름시장을 장악했던 후지필름은 2000년대 들어 과감한 사업재편에 나선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필름사업이 위기를 맞자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신 그들이 보유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유명한 '4분면 분석법' 이다. 기존기술과 신기술, 기존시장과 신시장으로 나누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와 진출해야 할 분야 등을 선정한 후 그에 따라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필름기술을 기반으로 LCD패널에 사용되는 필름사업 확대에 공을 들였고, 의약품과 화장품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약 7조원 가량의 돈을 과감하게 투자해 다양한 분야의 인수합병도 진행했다. 이같은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의 성과가 나타나며 후지필름은 지난해 2조4000억엔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필름시장의 강자로 자리잡고 있던 지난 2000년 매출 1조4000억엔보다 무려 1조엔이나 늘어난 수치다.

 

과거 종합 전자기업이던 히타치의 변신도 빠지지 않는 사례다. 지난 2008년 무려 10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히타치는 반도체와 LCD, 하드디스크드라이브, TV 등 전자관련 사업을 매각하고 인프라 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이탈리아 철도업체 등 지난 7년간 20조원 규모의 인수합병을 단행하며 종합 인프라기업으로 변신한 히타치는 지난해 9조7000억엔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 생존해법 ②M&A 

 

최근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IT분야 인수합병도 결국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과거 PC분야 강자였던 델은 최근 스토리지 업체인 EMC를 총 67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HP나 IBM과 같이 기업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다.

 

올들어 반도체 분야 인수합병 규모가 이미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조사결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싱가포르 아바고테크놀러지가 미국 브로드컴을 370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대형 인수합병이 잇따라 성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 자료 : 현대경제연구원

 

네덜란드 업체인 NXP반도체 역시 지난 3월 경쟁사인 프리스케일을 118억달러에 인수해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로 부상하기도 했다. 중국도 인수합병을 통해 반도체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인텔이나 애플, 구글 역시 크고 작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사업 다각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IT업계 외에도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국의 성장둔화 등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깊어지면서 덩치를 키워 시장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이 구사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 맥주 시장 1위 AB인베브(Inbev)는 2위 사브밀러(SAB Miller)를 690억파운드(약 121조원)에 인수하기로 했고, 세계 4위 담배업체인 재팬토바코는 5위인 이란 아리얀을 인수했다. 올해 전세계 인수합병 금액이 4조달러를 넘어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등이 소규모 인수합병을 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내기업들도 효율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선진기술 습득이나 저성장 한계 극복 등을 위해 국경을 뛰어넘는 인수합병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연구원은 "해외 동종기업에 대한 M&A를 추진해 기업 경쟁력 제고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 생존해법 ③ 최적화


'선택과 집중'을 기반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변화들도 이뤄지고 있다. 삼성그룹이 방산과 화학사업을 한화그룹에 넘긴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등 그룹내 비주력사업을 매각하며 사업분야를 줄였고, 한화는 기존 사업의 덩치를 키우는 효과를 얻었다.

 

LG그룹도 최근 LG화학 OLED조명부문을 LG디스플레이로 양도하며 그룹내 OLED사업을 일원화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LG디스플레이가 신성장동력인 OLED를 집중 육성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한 셈이다. LG그룹은 이미 자동차부품 관련사업을 LG전자에 집중시킨 바 있다.

 

포스코나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인원과 조직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포스코는 국내와 해외계열사를 대폭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만 25개 계열사를 구조조정한다는 목표를 세워둔 상태다. 오는 2017년까지 국내 계열사는 절반, 해외 계열사는 지금의 3분의1만 남길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인력 재배치에 나서는 등 재계에서는 당분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체질개선 작업들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그만큼 기업들이 처한 현실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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