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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보국' 조중훈 "사업은 예술이다"

  • 2015.11.03(화) 10:51

한진그룹 창립 70주년
조중훈 창업자 전기 펴내

"세계 항공 역사에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하나는 육중한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아오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70년대 한국의 항공사가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1972년 4월 19일 오후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은 태평양 횡단의 첫 임무를 띤 대한항공 KE002편 B707 여객기가 활주로에 바퀴를 내리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교민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일제의 강압에 못 견뎌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단한 삶을 견뎌온 동포들에게 태극마크가 새겨진 국적기는 국력의 표상이자 그들의 자랑이었다."(조중훈 傳記 '사업은 예술이다' 중에서)
 
1945년 11월 1일 '한진상사'로 시작한 한진그룹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창업주인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의 전기를 2일 발간했다. 조 전 회장은 2002년 11월 타계했다. 전기 집필은 미국 경제경영지 ‘포브스’한국판 기자 출신인 이임광 전기작가가 맡았다. 4년 6개월 동안 40여 명의 그룹 원로 및 지인을 인터뷰해 전기에 담아냈다.

 

#한민족의 전진

 

▲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자동차 정비공장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트럭 1대를 장만, 1945년 11월 1일 인천시 해안동에 ‘한진상사’를 창업했다. 사진은 1950년대 인천 소재 한진상사 창고 모습.(사진: 한진그룹)

 

일제 때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다가 조선총독부의 '기업정비령'으로 공장을 일본 군수업체에 빼앗긴 조중훈 회장은 1945년 광복이 되자 그간 모은 돈으로 트럭 1대를 장만해 인천 해안동에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었다. 스물다섯 청년이 내딛은 '수송보국'의 첫걸음이다. '한진'은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6·25전쟁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주한 미8군과 군수물자 수송 계약을 맺으면서 미군으로부터 신뢰를 쌓았다. 당시 트럭 운전기사가 수송을 맡은 미군 파카를 팔아먹은 사건이 벌어졌는데, 조 회장이 미군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사채 3만 달러를 빌려 남대문시장에 장물로 나온 파카 1300벌을 되사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베트남전

 

▲ 1950년대 조중훈 회장은 미군이 인천항으로 반입해 수십만 평 규모의 부평 보급창을 거쳐 의정부, 동두천 등지의 부대로 운반하는 군수품에 주목했다. 하지만 당시 미군은 한 트럭에 몇 만 달러나 되는 군수품의 수송을 한국 업체에 선뜻 맡길 수 없었다. 미군에게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조중훈 회장은 우선 캔맥주를 옮기는 일을 시작했다. 당장은 큰돈이 안 되더라도 신뢰를 쌓기에는 충분하다고 봤다. 한진상사의 미군 수송 용역은 한진상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1950년대 한진상사의 미군 군수품 수송 장면.(사진: 한진그룹)


미군과 맺은 인연은 베트남전 때 비약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65년 동남아시아 경제시찰단에 참여해 여러 곳을 돌던 중 베트남 퀴논항 상공에서 내려다본 ‘배 반 물 반’의 항구 모습을 보고 사업을 결심했다.

 

조 회장은 현지 미군 부대를 찾아가 "미군이 1주일에 한 척도 못 감당하는 하역을 3일에 한 척씩 해내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못 지키면 하루에 벌금 1만 달러를 내겠다"는 조건도 달았다. 이런 각오로 총탄이 쏟아지는 하역장을 지켜며 현장을 이끌었다.

 

66년 미군과 첫 계약을 하고 나서부터 71년까지 조 회장이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1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가 채 안됐다. 조 회장은 "금전적인 수입보다, 훈장보다 값진 소득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더라도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 인수

 

▲ 1969년 3월 김포공항에서 열린 대한항공공사 인수식 모습. 조중훈 회장은 여러 번 당국의 대한항공공사 인수 요청을 고사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고,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까지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전용기는 그만두고서라도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여행 한 번 해보는 게 내 소망이다”라고 간곡하게 권유해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를 결정했다. (사진: 한진그룹)

 

조 회장의 결단력은 1969년 누적 적자가 27억원이었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는 데서도 빛을 발한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수명이 다 한 프로펠러 비행기 7대와 제트기 1대를 보유한 동아시아 최하위 항공사였다.

 

조 회장은 인수를 반대하는 임원들에게 "돈을 벌자고 시작했다가 밑지는 사업도 있고 밑지면서도 계속 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 국익 차원에서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3년 뒤인 1972년 4월 대한항공은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객 노선을 개설했다.

 

선택의 기로 때마다 조 회장은 "사업은 예술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남을 모방하지 말고 자신의 혼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창의력과 아이디어, 노력이 융합해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진의 미래

 

▲ 해운사 설립을 준비하던 조중훈 회장은 1977년 초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항공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육상운송과 항공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해운 발전에도 힘써 달라”는 격려를 받는다. 사진은 1990년 한부호 진수식 모습.(사진: 한진그룹)


1972년 한진상사가 ㈜한진으로 이름을 바꿨고, 1977년 한진해운이 출범하면서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국내 유일의 수송 전문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대한항공은 여객수송 세계 17위, 화물수송 3위에 올랐으며, 한진해운은 컨테이너 선복량(적재량) 기준 세계 8위 규모로 성장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6월 최신 항공기인 보잉 B737max와 에어버스 A320neo를 각각 50대씩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100대를 한꺼번에 계약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대한항공 창립 45주년인 지난해 '2019년 매출 50조원, 항공 부문 세계 10위, 해운 부문 세계 3위, 육운 부문 국내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계열사인 진에어는 다음 달 국내 LCC(저비용 항공사) 가운데 최초로 장거리 노선(인천~호놀룰루)에 취항하며 새 도전에 나선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일 오후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트타워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사진: 한진그룹)

 

■한진그룹 현황
계열사 : 39개사(상장 5개사 포함)
고용인원 : 3만6139명
2014년 매출액 : 23조2676억원
2014년 영업이익 : 5632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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