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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학자금을 왜 국세청에 갚아야 합니까"

  • 2015.11.19(목) 10:00

이인기 국세청 학자금상환과장 "대학생들 자존심 지켜줄 것"
"학자금 대출 100만명 돌파..2017년부터 본격 상환 전망"

"학자금을 갚으라고요? 그거 장학금 아니었나요? 저는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았는데요."

 

"국세청에서 돈 빌린 적 없는데요? 졸업한 지도 한참 지났는데, 갑자기 왜 그러시죠?"

 

"학자금 대출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창피하잖아요. 방법이 없을까요?"

 

대학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는 '든든학자금' 제도. 2010년 도입된 후 지금까지 100만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이 대출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공식 명칭은 '취업 후 학자금 상환(ICL: Income Contingent Loan)'인데, 영어 표현대로 대학생들이 직장에 취업해 소득이 생기면 월급에서 조금씩 갚아나가는 방식의 학자금 대출이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은 대학생 입장에선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미리 학자금을 빌려쓰고 나중에 분할 상환하는 것인데, 정부가 학업지원을 위해 조성한 대출인 만큼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빚 독촉에 시달릴 염려가 없다는 점이 메리트다.

 

학자금은 교육부 산하 한국장학재단에서 빌려주지만, 월급에서 상환하는 업무는 국세청이 담당한다. 국세청에서 돈 빌린 적이 없는데, 뭘 갚으라는 소리냐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학자금 상환을 담당하는 국세청이 힘이 센 기관이다 보니, 새내기 직장인들은 일부 심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적잖다. 상환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국세청이 신경쓰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금을 걷는 국세청이 왜 학자금 상환에 뛰어든 것일까. 지난 17일 오후 정부세종2청사에서 이인기 국세청 학자금상환과장을 만나 든든학자금 제도에 얽힌 얘기와 이 제도를 잘 활용하기 위한 팁을 들어봤다. 

 

▲ 이인기 국세청 학자금상환과장이 17일 정부세종2청사에서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하고 있다./이명근 기자 qwe123@

 

# 100만명에 8조원 지원..어떻게 빌리고, 어떻게 갚나

 

▲ 먼저 든든학자금에 대해 소개부터 해주시죠. 모든 대학생이 다 대출 받을 수 있나요.

 

아주 부잣집 대학생만 아니라면 가능합니다. 월 소득이 855만원 이하인 가정의 대학생들은 등록금 전액과 연간 300만원 한도의 생활비를 대출 받을 수 있습니다. 3자녀 이상이면 소득 분위와 상관없이 대출도 됩니다. 도입된 지 5년 만에 105만명이 대출을 받았고, 금액은 8조2000억원입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졸업하고 취업하는 시점인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상환이 더 이뤄질 전망입니다.

 

▲ 저금리 시대라 낮은 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학자금 대출 이자는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는지요.

 

기준금리 인하 추세에 따라 학자금 이자도 매년 낮아지고 있습니다. 6개월에 한번씩 조정하는데, 지금은 연 2.7% 수준입니다. 웬만한 금융사들 대출보다 낮죠. 게다가 대출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처럼) 담보나 신용능력을 보지 않으니까 대학생들에게는 저금리로 학자금을 빌릴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학자금은 어떻게 상환하나요. 취업난이 심해져서 구직이 안되면 상환이 힘들어질텐데 불이익은 없나요.

 

대학생이 취업한 후 일정 소득이 발생하면 학자금 상환 모드가 가동됩니다. 올해 총급여 기준 1856만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초과 소득의 20%를 대출 원리금으로 갚아나가는 구조입니다. 만약 대학 졸업후 취업이 늦어지게 되면 학자금 이자는 계속 부담해야 하지만 따로 상환을 독촉하거나 신용불량자로 만들진 않습니다. 상환을 계속 유예합니다. 학력과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만든다는 취지니까요.

 

# 세금걷는 국세청, 학자금 상환 업무까지 왜?

 

▲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곳인데요. 학자금 상환까지 담당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원래 한국장학재단이 학자금을 대출해줬으면, 거기서 상환업무까지 맡는 것이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대학은 전국 곳곳에 퍼져있고, 상환대상자인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자금 상환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전국망을 갖춘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국세청은 전국에 세무서를 두고 있으니까 학자금 상환에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거죠.

 

▲ 외국에서도 국세청이 학자금 상환 업무를 맡는 경우가 있는지요.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국세청이 학자금 상환을 받는데, 상환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재산이나 소득파악에는 국세청이 관련 정보나 노하우가 있으니까요. 상환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도 있고요. 국세청에선 일이 늘어나긴 했지만, 신용불량자 양산을 막는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그래도 대학생이나 신입사원 입장에선 국세청에 대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텐데요.

 

대학 다닐 때 학자금을 대출받고, 군대나 취업 준비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 대출받은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갑자기 국세청으로부터 학자금 상환 안내를 받으면 당황하거나, 화를 내는 분들도 있는데요.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부터 상환 대상자에게 수시로 안내문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 회사에 알려지는 대출..부담스러운데

 

▲ 월급에서 대출금을 상환받으려면 회사에 알려야할텐데, 회사에 갓 취직한 신입직원들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일단 상환 대상자가 입사한 지 1년이 지난 후 6월쯤 국세청이 회사에 안내문을 보냅니다. 회사가 어느 직원으로부터 얼마를 떼야할 지, 계좌번호와 함께 알려주는데요. 매년 회사 경리팀에게 메일도 보내고, 찾아가는 설명회도 합니다. 다만 학자금 상환 대상자가 있는 회사에만 안내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는데 '저 친구는 대출이 많다더라'는 인식을 회사나 동료들에게 심어줄 수 있겠죠. 회사 경영지원 부서에서도 업무 부담이 늘어나니까 싫어할 수도 있고요.

 

▲ 입사하자마자 학자금 대출 사실을 알리는 게 아니었군요. 선납 제도를 잘 활용하는 팁 같은 것도 있나요. 

 

국세청이 소득을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연간 소득이 1856만원을 넘는지 알려면 1년이 지나야겠죠. 그러니까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은 내년 5월에야 학자금 상환 대상이 됩니다. 국세청이 회사에는 6월15일쯤 학자금 상환 사실을 통지하니까, 신입사원이 6월 초(10일)까지 학자금을 선납하면 회사에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에서도 따로 상환금을 뗄 게 없어지니까요. 

 

학자금 상환대상자들을 상대로 선납분 1년치 평균을 내보니 84만원 정도였습니다. 한 달에 7만원 정도죠. 적은 경우는 연간 36만원도 있습니다. 매월 3만원 때문에 대출 사실을 회사에 알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 그냥 회사에 알리지 않는 방법은 없나요.

 

안 그래도 상담센터에 들어오는 민원 중 60%가 그런 얘기였습니다. 회사에는 비밀로 해달라고요. 종전에는 1000만원이든 2000만원이든 학자금 전액을 갚아야만 해결이 됐는데요. 지난 6월부터 상환대상자가 1년치 상환액을 미리 내면, 회사에 알리지 않도록 제도를 바꿨습니다. 선납은 6개월씩 두 번에 나눠서 낼 수도 있습니다. 학자금 선납제도는 5월에 관련 법이 통과되고 6월22일부터 시행했는데, 한 달 만에 상환대상자 3명 중 1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만큼 신입사원들 입장에선 대출 사실을 알리기 싫었던 겁니다.

 

# 학자금 상환의 벽을 허물다

 

▲ 대출자들의 부담을 생각하면 학자금 선납은 진작 시행했어야 할 제도같은데, 늦어진 이유가 있나요.

 

도입 초기에는 선납의 필요성이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매월 나눠서 상환하는 게 유리하지, 한꺼번에 낼 필요가 있냐는 거였죠. 그런데 상담센터 직원들과 만나서 얘길 들어보니까, 상환 대상자들의 불편 사항을 알게 됐습니다. 원래 법의 주인은 교육부였고, 대출은 장학재단, 상환은 국세청이 하잖아요. 3개 기관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 해답을 찾은 겁니다.

 

▲ 선납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학자금 대출사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도전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법률이 개정되고, 그 다음에 거기에 맞는 전산시스템을 개발하는 절차를 밟는데요. 하지만 선납 시스템은 워낙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에 지난해부터 미리 예산을 따내서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입법과 동시에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획재정부에서 오래 근무했으니까, 입법 시스템에 대한 이해나 예산실을 찾아가 설득하는 데도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 만약에 대학 졸업 후 자영업자가 되면 어떻게 되죠. 직접 학자금을 상환하나요.

 

네, 종전까진 자영업자가 직접 세무서에 학자금을 신고 납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국세청에서도 이미 학자금 대출 사실을 다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올해부터 신고 납부 제도를 아예 폐지했습니다. 국세청이 전기요금처럼 상환액을 부과하면, 자영업자가 가상계좌로 송금만 하면 됩니다. 고지방식으로 바뀌다보니, 세무서에서도 5월 종합소득세 신고기간에 따로 학자금 상환 창구를 만들지 않아도 되죠. 사업자나 국세청 모두 편리해지고 업무 부담을 덜게 됐습니다.
(국세청의 자영업자 학자금 상환 개선방안은 행정자치부 장관 주최 국민생활 불편 개선사례로 선정돼 오는 24일 수상을 앞두고 있다.)

 

▲ 이인기 국세청 학자금상환과장이 17일 정부세종2청사에서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하고 있다./이명근 기자 qwe123@

 

#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

 

▲ 학자금 상환 실무 책임자로서 2년간 느낀 점과 학자금 대출을 받는 이들에게 당부할 말씀이 있다면.

 

빚에 대한 속담 중에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요. 빌려준 돈을 받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깁니다. 그래도 대학생들이 최대한 자존심 상하지 않고 편하게 상환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나갈 생각입니다. 학자금 상환은 국세청이 상환 부분만 위탁 받아서 하는 일인데, 이제는 고유 업무가 될 정도로 업무량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막 100만명을 넘어섰는데, 이 대출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겁니다. 

 

당부드리고 싶은 부분은 만약 전화번호나 주소가 바뀌면 학자금 상환 홈페이지에 즉시 업데이트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상환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개인 상환 정보가 노출될 우려도 있으니까요. 국세청은 앞으로도 학자금의 성실한 상환을 지원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과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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