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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옥살이와 전관예우

  • 2013.04.26(금) 11:12


얼마전 친구 기자들과의 저녁자리. '전관예우'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전관예우란 원래 법조계에서 통용됐던 말이다. 판사나 검사로 재직하던 법조인이 퇴직후 변호사 개업을 해 첫 소송을 맡았을 때 현직에 있는 후배들이 소송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던 관행을 일컫는다. 부장급 판·검사 이상의 고위 법조인들은 전관예우를 등에 업고 재벌 총수나 정치적 거물이 연관된 대형 소송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수임료와 성공 보수로 두둑한 수입을 올렸으리란 건 두말하면 잔소리.

 
이날 전관예우가 화제가 된 건 국내 대형 로펌이 최근 교도관 출신을 특채했다는 얘기에서 시작됐다. 로펌이 판·검사나 국세청, 감사원 등 이른바 힘있는 기관 출신들을 영입해 대기업 관련 소송이나 각종 로비에 활용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 그런데 교도관 출신을 왜? 이유를 듣고서는 다들 무릎을 쳤다. 재벌 회장님들이 감옥살이를 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란다. 판검사 출신들의 역할은 회장님의 혐의를 벗겨주거나, 못 벗기겠다면 최소한의 가벼운 처벌을 내리도록 하는데 까지다. 예전엔 전관 판·검사만으로 이런 서비스가 가능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 로펌은 왜 교도관 출신이 필요했을까
 
올해초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해 8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돼 같은 코스를 밟고 감방에 들어갔다. 이들이 감옥살이까지 하게 된 것은 죄가 중해서이기도 하지만 때를 잘못 만난 탓(?)도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는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등장했고, 재벌의 탐욕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여론의 비판은 재벌 총수들에 대한 법원의 '정찰제 판결'로 연결됐다. 
 
한때 재벌 오너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죄의 종류나 경중에 관계없이 재벌 총수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로펌들은 총수가 구속되면 보석으로 대응했고, 1심에서 실형이 떨어지면 2심에서라도 집행유예를 받아냈다.
 
지난해부터 법원은 엄격한 법적용에 나섰다. 재벌 탐욕과 황제경영의 폐해를 바로 잡으려면 정찰제 판결부터 고쳐야 한다는 따가운 시선속에서 '피고 회장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재판을 받던 총수들이 법정에서 곧바로 구치소로 향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회장님이 수감생활 중 다리를 접질려 깁스를 하고, 사식이 허용되지 않는 구치소에서 음식때문에 고생하다 당뇨 수치가 올라 고생한다는 소식까지 국민들은 접할 수 있었다.
 
내로라하는 전관들과 변호사들을 거느리고도 회장님을 이런 지경으로 내몬 로펌의 처지는 옹색할 밖에. 그런데 판·검사와 권력기관 출신의 전관들이 회장님 옥바라지나 감방생활에서의 편의를 어떻게 봐줘야 할 지는 알 도리가 없다. 갑자기 커피나 단 것이 당기거나, 보고 싶은 책이 있을 때, 운동을 하고 싶거나 건강에 사소한 이상을 느낄 때 등등 격리된 감옥에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적지 않을 테다. 소송에 진 로펌 입장에서는 옥바라지라도 해주겠다는 자세로 고객에 대한 소임을 다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며칠뒤 로펌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나 물었더니 "꼭 그런 목적으로 고용한 건 아니고…"라며 말을 흐렸다.
 
◇ '기업인 수난시대'?..전관의 역할 어디까지

 
앞으로의 수요까지 감안했을까. 지금까지의 분위기라면 박근혜 정부에서 기업인들의 감방행은 늘어날 지도 모른다. 해외로 빠져나간 세금을 추적하고, 부당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를 들여다보고,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가조작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법망에 걸려들 이들은 오너 내지 CEO급 경영자일 공산이 크다. 우리 법원이 선진국의 사례를 본받아 화이트칼라 범죄에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나 경영인들은 재산형(財産刑)이 아니라 징역 같은 자유형(自由刑)으로 죗값을 치러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관예우를 활용하기 위해 더 많은 교도관 출신이 필요할 수 있겠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전관예우는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 대형 로펌은 판검사 뿐 아니라 고위 관료와 규제·감독 당국 간부 등 힘있는 기관 출신들을 모셔가기 바쁘다. 현직에 있을 때 대기업·금융기관을 상대로 세금과 과징금을 때리고, 대기업 회장과 CEO들을 규제의 틀에 옭아넣어 고발하는 권한을 가졌던 이들이다. 재벌과 금융그룹들은 직접 나서거나 보험을 들어두기도 한다. 대기업 계열사의 사외이사나 은행 감사 자리가 판·검사나 고위 관료, 국세청·공정위·금감원 출신들로 대부분 채워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후배도 시간이 지나 공직의 옷을 벗으면 결국 전관이 될 터. 선배의 청탁을 매정하게 물리치긴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누이좋고 매부좋은 '호혜적 공생' 시스템은 전관예우를 통해 이렇게 형성돼 왔다.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은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과 일벌백계만으론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전관예우와 호혜적 공생의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변호사법과 공직자윤리법을 바꿨지만 전관예우는 여전히 존재하고 나름의 생태계속에서 원할하게 작동하고 있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국민을 위한 봉사를 외쳐대던 우리 사회의 전관들이 퇴직후 로펌이나 대기업·은행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편법을 비호하고, 죄를 깎아주는 데 활용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청문회에서 국민들앞에 공개되면 대부분 고개를 숙여야 하는 처신들이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충분히 우울하다. 혹시라도 죗값을 편하게 치르는 데까지 전관이 활용된다는 뉴스는 제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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