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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라도 행복한 학교

  • 2016.03.31(목) 15:27

[페북 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서울 남산을 오르는 도로변.

 

아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들렀을 법한 돈까스집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여명학교가 보인다. 여명학교는 2004년 개교했다. 탈북 청소년과 탈북 주민의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다. 운영비를 전적으로 후원에 의존하다 보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통일부에서 일부 지원을 받고 있다.

 


여명학교 이흥훈 교장은 2012년부터 교장을 맡고 있다. 이 교장에게 그 어떤 보상보다 더 가치 있는 선물은 바로 학생들이다. 여명학교 학생들은 문화와 이념, 사고방식 등이 모두 다르다 보니 교육 과정에서 애로사항이 많다. 수시로 입학하는 구조여서 학생 수도 계속 달라진다.

 

작년엔 117명의 학생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졸업생 중 상당수는 전문대에 진학했고, 유명 사립대에 진학한 학생도 있다.

 

이 교장은 그럴 때마다 가슴이 뿌듯하다. 목숨을 걸고 두세 번 국경을 넘으면서 자유 대한민국 여명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인데,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더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명학교 학생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 중이다.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가족이 깨진 상태에서 홀로서야 하는 학생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교장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장 큰 소망을 묻는 말엔 어김없이 여명학교 학생을 한 명도 잃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여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오수지 선생님은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보조 영어강사로 봉사하다가 2014년부터 정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예고 영어교사 출신인 그는 힘들지 않으냐는 주변의 질문에 학생들의 열정 덕분에 오히려 더 힘이 솟는다고 답한다.

 


실제로 한 번은 영어 테스트 후 채점 과정에서 울음을 터뜨린 학생이 있었다. 오 선생님은 혹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준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학생은 영어를 처음 접하면서 너무 재미있었는데 문제를 너무 많이 틀리자 스스로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만큼 배움의 열의가 강하다.

 


이 교장은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는 여전히 이방인입니다. 다가가고 싶긴 하지만 거리감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은 사랑입니다. 그러려면 기다려 줄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금껏 꿈을 가지고 이 일을 할 힘은 바로 그 믿음에서 나옵니다. 남북을 모두 경험해본 이들이 통일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세상이 변한다. 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그런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겐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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