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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애경家 시누이올케…이만한 ‘짝꿍’이 없다

  • 2016.07.26(화) 14:00

[방계家 사람들] 시즌2 <4>우영운수
김보겸 회장, 장영신 애경 회장의 셋째오빠 故 장위돈 교수 부인
남편 유산 운송업 물려받고 경영일선…계열 4곳, 성장 뒤엔 애경

#1. ‘국내 1호 여성 최고경영자(CEO)’. 평범한 가정주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기업인의 삶은 전혀 꿈꾸지 않았다. 하지만 경영자 인생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비누 회사를 만들어 17년간 사업을 이끌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넷째를 낳은 지 3일만이었고, 결혼 11주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아직 34세, 정말 젊은 나이였다. 절망했다. 1년여를 실의에 빠져 지냈다. 그러나 네 남매를 향한 모성이 ‘비누 인생’으로 이끌었다. 남편의 1주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숙명처럼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초창기 쏟아졌던 물음표는 모두 느낌표로 바뀐 지 오래다. 남편이 남긴 작은 생활용품 기업은 유통과 항공, 부동산, 호텔 등 국내외 41개(2015년) 계열사를 거느린 연매출 6조원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2. ‘트럭 CEO로 변신한 피아니스트’. 의사 집안에서 곱게 자랐다. 피아노를 전공한 모친의 영향을 받아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명문여고와 명문여대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다.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대학교수 출신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외국생활을 오래 했고, ‘트럭 인생’은 전혀 계획에 없었다.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지 5년 되던 해, 남편이 급환으로 56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남편이 물려준 유산은 조그만 운송업체였다. 세 아들은 고1, 중3, 초6이었고, 그의 나이 43세 였다. 억센 화물차 기사들을 다독이며 억척스럽게 일했다. 남성의 전유물로 알려진 운송업에 뛰어든지 30여년, 운송·보관·물류·인력운영 사업을 하는 견실한 기업을 일궈내며, 여성 경영인으로 나설 무렵 세상이 던진 의문부호에 대해 통쾌하게 응답했다.

피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닮을 수 있는 건 다 닮은 장영신(80) 애경그룹 회장과 김보겸(75) 우영운수 회장의 만남은 꽤 자연스러운 그림이다. 지금 둘의 만남은 단순한 시누이올케 사이를 뛰어넘는다. 경기여고 5년 선후배(각각 43회, 48회)이기도 한 둘은 사업적으로 이만큼 죽이 잘 맞는 ‘짝꿍’이 없다. 애경의 성장사(史)가 곧 우영운수의 오늘이다.

김 회장의 친정은 의사 집안이다. 부친이 국내 소아학과 발전의 한 획을 그은 의학박사 고(故) 김영택(1912~2002) 전(前) 우석대 총장이다. 김 전 총장과 고 홍옥선(1917~2009)씨 슬하의 2남 2녀 중 맏딸이 김 회장이다. 오빠는 고려대 구로병원장을 지낸 김순겸(77) 고려대 명예교수다.

김 회장이 결혼한 때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를 나와 미국 유학 때인 1965년으로 24살 때다. 남편이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활동했고, 박정희 정부(1961~1979년) 때인 1970년 청와대 정치담당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며, 학원을 떠나 현실정치에 입문해 외교안보연구원장, 에콰도르 대사 등을 지낸 고 장위돈(1928~1984년) 박사다. 장 회장의 셋째 오빠다.  

우영운수는 장 전 교수가 에콰도르 대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1979년 10월 창업한 우영화물이 전신(前身·원래는 개인업체로 운영하다가 1995년 4월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했다)이다. 하지만 장 장 교수가 창업 5년 만에 별세하자 1984년 김 회장이 물려받으며 경영에 뛰어들었다.

 


기회는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자주 찾아오면 그건 일상이지 기회가 아니다. 사업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시누이 장 회장이 힘을 실어준 순도 높은(?) 기회에 김 회장은 집중했고 이를 잘 활용했다. 결과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내용도 좋았다. 오답 노트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한결 같다.

남편 고 채몽인(1917~1970년) 애경 창업주의 뒤를 이어 1972년부터 장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애경은 1980~90년대에 이르러 비누, 합성세제와 더불어 합성수지 분야에서 시장 주도적인 입지를 가졌다. 우영운수 또한 순조로웠다. 애경이 만들어내는 샴푸, 비누, 세탁 세제 등을 운송하는 것만으로도 수지를 맞출 수 있었고, 발전시킬 여지가 충분했다.

한 우물을 계속 파다 보면 한 우물 안에서 활용할 분야가 계속 넓어지게 된다. 애경을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하던 김 회장은 핵심 사업을 둘러싼 주변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물류 창고를 짓고, 포장 운반이 필요하다 보니 인력 공급 사업으로 확장하며 사업을 벌려나갔다. 애경이 1993년 서울 구로구 구로동 옛 공장 터에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 구로본점)을 열며 백화점 사업에 나서자 승부사는 날개를 달았다.

현재 우영운수는 사업부문 별로 개별회사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우영운수를 비롯해 비컨로지스틱스, 에이엘오, 인셋 등이 김 회장이 거느리는 계열사들의 면면이다. 아울러 김 회장을 비롯해 세 아들과 며느리들만이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는, 외부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순도 100%의 가족기업들이기도 하다.

고령인 장 회장은 회장 직함만 갖고 있을 뿐, 3남 1녀 중 맏아들인 채형석(56) 총괄부회장에게로 애경그룹의 경영 승계는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김 회장의 나이도 어느덧 고희(古稀)를 넘어선 70대 중반이다. 세 아들 중 둘째와 막내가 계열사 대표를 맡아 경영을 총괄하는 등 김 회장이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어린 학생이었던 2세들이 가업을 승계할 환경을 갖추고 있다. ☞ ‘②‘우영’ is 뭔들…한 걸음 한걸음 애경 곁으로’ 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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