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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서 담배로…'서민증세' 결말은

  • 2014.09.15(월) 09:30

정부, 2005년 소주세율 인상 시도…국회 반대로 무산
담뱃세 인상 여론 부담…연말 '입법전쟁' 예고

"워낙 우리 경제가 침체돼 있어서 서민정서 등을 감안해 여야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소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에 대한 세율 72%를 90%로 인상하는 안은 폐기하겠습니다."-송영길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조세소위원장

 

2005년 12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정부가 가져온 소주세율 인상 법안을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의원들은 "위스키 세율은 올려도 소주 세율은 올릴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정부에선 일단 법안을 계류라도 시켜달라고 간청했지만, 국회 재경위는 '삭제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렇게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는 '소주 한잔'에 세금을 더 물리는 법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10년이 지난 이후에도 소주 세율은 변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10년 만에 '서민 증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담배로 시작해 주민세와 자동차세까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세수 부족 사태 속에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겨냥하면서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당초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표방하며 국민들의 세부담을 늘리는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말을 바꾸며 납세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연말 국회에서는 '서민 증세'를 놓고 여당이 지휘하는 정부와 여론을 등에 업은 야당의 한판승부가 예상된다.

 

◇ 10년 만에 서민 겨눈다

 

정부가 서민들의 세금에 손을 댄 것은 꼬박 10년 만이다. 2005년 참여정부는 소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의 세율을 72%에서 90%로 인상하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적절히 반영하고, 세부담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며 세율 인상을 강행했다. 최근 정부가 담뱃세를 인상하는 이유와 똑같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서민 가계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소주세율 인상에 반대했고, 결국 국회에서 정부의 입법안을 무산시켰다. 위스키 세율만 올리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통상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입법안은 완전 폐지됐다. 이후 소주의 세율은 10년째 72%로 동결되는 '불가침의 영역'이 됐다.

 

올해는 소주 대신 담배가 화두에 올랐다.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신설하고,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등의 세율을 인상하는 '직접적 증세'가 등장했다. 담뱃값을 올리면 소비량이 감소하는 '탄성치'를 감안하더라도 연간 2조8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걷는 주민세와 자동차세를 인상하는 세법개정안도 나왔다. 주민세는 2년간 2배 이상 올리고, 자동차세는 2017년까지 100% 인상한다. 지자체가 추가로 확보할 세수는 1조4000억원이다.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은 그동안 정부가 그토록 손사래를 쳤던 '직접적 증세' 방식이다.

 

 

◇ 뒤바뀐 與野…국회 문턱 넘을까

 

10년 전 야당과 여당은 자리를 바꾸고, 세율 인상에 대한 입장도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부자감세로 인한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서민 호주머니를 터는 서민증세"라며 정부의 담뱃세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국회 기재위 소속 위원들은 정부안의 입법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다.


'서민증세' 여론이 악화되면 조세 저항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입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주민세의 경우 과세대상과 세율이 명확해 국민들이 조세부담 인식이 용이하다"며 "이에 따른 조세저항이 클 것으로 보여 증세 도입 시 의견수렴절차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담뱃세 인상에 대한 국민 정서에 주목하고 있다. 최성은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의 낙이 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는 정서적 문제가 남아있다"며 "담배 세수의 적절한 활용 문제는 여전히 담배과세 강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담뱃세와 주민세 등의 증세 법안은 연말 국회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정부의 입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으려면 '국민 건강'이라는 명분이 '서민 증세'에 대한 반감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가 세수 확보에 나선다는 오해도 직접 풀어야 한다. 만약 정부의 입법안이 무산될 경우 '서민 증세'는 다시 오랜 기간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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