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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2 현대차의 ‘헛심’…2년여만에 ‘사정권’

  • 2017.06.15(목) 14:03

[격변의 재계]일감몰아주기
2015년 2월 규제 시행 전후로 모두 정리…사실상 ‘무풍지대’
상장지분 30%→20% 강화시 ‘말 많은’ 글로비스·이노션 타깃

현대자동차가 ‘헛심’을 팔았다.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지 2년여 만에 다시 사정권에 들어갈 위기에 놓였다.

2015년,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오너 일가는 주요 계열사 소유지분 정리에 나섰다. 상장 물류업체 현대글로비스 13.4%를 기관투자가에게 넘겼다. 광고대행사 이노션은 16.7%를 상장공모 물량으로 내놓았다. 이를 통해 현재 두 계열의 총수 일가 지분은 정확히 29.9%에 맞춰져 있다. 비상장 시스템통합(SI) 업체 현대오토에버의 경우에도 9.7% 매각을 통해 19.5%로 낮췄다.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본격 시행(2015년 2월)됐던 해다. 여기에 비상장 건설업체 현대엠코 지분 35.1%는 이보다 앞서 2014년 4월 합병을 통해 비상장 현대엔지니어링 16.4%로 갈아탔다. 재계에서는 흔하디흔한 일감몰아주기 케이스로서, 내부거래 비중 또한 압도적으로 커 제재의 타깃이 될 가능성 높았던 물류·광고대행·SI·건설 4개 분야 계열사들이다.

 

 


아낌없는 공을 들인 결과 여태껏 현대차그룹은 사실상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비켜나있었다. 현재 현대차 소속 계열사 중 정 회장 및 일가 보유지분이 상장 30%, 비상장 20% 이상인 계열사로는 3개사가 있지만 일감몰아주기 규제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계열사들이다. 

서림개발은 정 회장의 1남3녀 중 외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1인 소유의 계열사다. 토지임대 및 축산업을 한다. 현대커머셜은 둘째사위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부회장 부부가 40%를 소유한 할부금융업체다. 이외에 조카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유일주주인 철강중개 및 운송업체로 현대머티리얼이 있다.

이들 3개 계열사는 내부거래가 전혀 없거나, 있다고 해도 200억원을 넘지 않는다. 비중을 따져봐도 12%에 한참 못 미친다. 현대차 계열 중 현재 규제 대상이 되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셈이다.

무풍지대였던 현대차에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새 정부와 정치권에 밀어붙이고 있는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현행 상장 3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강화하는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말 많던’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이 2년여 만에 다시 규제의 사정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면면을 뜯어보면, 현대글로비스가 2016년 국내 계열사들로부터 올린 매출은 2조5200억에 달한다. 10대그룹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26개사(지분 요건 상장 30%→20% 강화시) 중 삼성물산(2조9851억원) 다음으로 많다. 비중도 전체 매출의 20.6%를 차지한다. 해외 계열사 매출(5조6700억원)까지 포함하면 66.9%로 치솟는다. 현대글로비스의 성장 배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는 정의선 부회장이다. 23.2%를 소유 중이다. 이어 부친 정몽구 회장이 6.7%를 갖고 있다.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에 투자한 돈은 2001년 2월 설립 초기 30억원이다. 이 중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친 지분 매각으로 손에 쥔 돈만 8280억원에 이른다. 또 현 소유지분 가치는 1조3800억원에 달한다. 

정 부회장으로서는 그간의 배당금을 제외하더라고 현대글로비스에 30억원을 투자한 지 16년여 만에 2조2100억원을 거머쥔 것이다. 계열 물류를 전담하다시피 하며 오너 2세의 주식가치를 키워온 현대글로비스는 지금껏 존재 목적에 가장 충실한 계열사라고 할 만 하다.

이노션도 예외는 아니다. 이노션은 정 회장이 맏딸 정성이 고문 몫으로 떼 준 계열사다. 정 고문은 현재 이노션의 최대주주로서 지분 27.9%를 가지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도 2%를 소유하고 있다.

정 고문이 이노션에 출자한 자금은 2005년 5월 설립 당시 자본금 30억원 중 40%인 12억원이 전부다. 여기에 정 부회장이 12억원, 정 회장이 6억원을 댔다. 정 고문은 2015년 7월 이노션 상장 당시 8.9%를 매각, 1090억원을 손에 쥐었다. 현 보유지분 가치는 3510억원에 이른다. 정 고문으로서는 12억원을 가지고 12년만에 4600억원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계열 물량이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이노션의 내부거래는 오히려 증가 추세다. 2013년 1380억원 수준이던 계열 매출은 매년 예외 없이 증가하며 2016년에는 229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에 따라 38.7%였던 계열 비중은 54.4%로 뛴 상태다.

계열 비중이 워낙 큰 탓에 현대글로비스나 이노션이 짧은 기간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총수 일가의 지분을 20% 밑으로 떨어뜨리는 길 밖에 없다. 지분 매각이나 다른 계열사와의 합병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여간 품이 드는 게 아니다. 

우선 현대글로비스가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 계열사라는 점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을 지탱하는 4개 순환출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 이를 차치하고라도 정의선 부회장의 소유지분은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가장 요긴하게 써야할 재원이다. 허투루 지분에 손을 댈 수 없다는 뜻이다.

이노션도 마찬가지다. 정의선 부회장이 2%를 정리한다 해도 실권을 쥐고 있는 정고문의 지분을 20% 밑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계열 주주사 등 확실한 우호지분을 확보하지 않는 한 지배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그만큼 현대차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사정권에 벗어나기 위한 해법 찾기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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