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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금융소비자보호처장 임명권을 포기하는 게 낫다

  • 2013.06.21(금) 17:56

지긋지긋한 밥그릇 싸움에 금융소비자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태스크포스(TF)를 맡은 김인철 위원장(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경제학회장)과 위원인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의 고충은 미뤄 짐작되지만, 그저 양 조직(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눈치를 보며, 그 좋은 머리로 한 개씩 주고받는 그럴듯한 안을 만들었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척지지 않겠다는 마음이라면 연구보다는 여의도 정치판에 투신하는 게 낫겠다 싶다.

모두 알고 있듯이 지금과 같은 금융 감독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소위 관(官)에 의한 금융 감독은 해체됐고, 관료들은 사실상 무장 해제됐다. 정부의 특별위원회로 구조조정을 담당하던 금융감독위원회가 몇 번의 밥그릇 싸움을 거쳐 행정 조직상의 금융위원회로 자리를 잡았다. IMF 외환위기 전의 정부조직법상 부처와 다를 것이 없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명분으로 작용했던 것이 우리나라 법체계상 행정조치는 공무원(정부 조직)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 자체가 IMF 외환위기의 교훈과 반성을 잊은 발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모든 것은 공무원만이 할 수 있다는 사고가 당시에도 지배했다면 특별위원회 같은 조직은 탄생할 이유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때는 죄인처럼 뒤에 숨어 있다가 지금은 이런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도 비슷한 밥그릇 싸움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있다. 증권 관련 범죄에 관한 행정조치에선 철저하게 검찰과 법무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소권은 검찰에 있기 때문이다.

각종 자본시장의 범죄에 대응이 늦다는 비판이 쏟아지면 금융위는 항상 검찰 핑계를 댄다. ‘우리는 기소권이 없어 이런 범죄를 단죄하거나 빨리 대응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금융 감독과 검사에 대한 조치에선 금융위의 이런 처지가 금감원과 하나 다를 것이 없다. 요새 유행어로 한다면 금융위는 검찰과의 관계에선 ‘을’이지만, 금감원에 대해선 ‘갑’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고와 문제풀이 해법이라면 현재 당면한 시대적 요구를 금융 감독체계에 담아내는 것은 애초부터 그른 것이다.

2013년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금융소비자보호다. 애초에 양 조직의 조직논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한걸음 뒤에서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자고 TF를 만들었다.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아이템은 필연적으로 금융회사에 규제와 책임을 더하는 것이다. 금융회사에 책임을 더하는 것과 비효율적인 업무를 추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필요 때문에 책임을 강화한다면 효율적으로 해야 하는데, TF의 개편안은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금감원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항상 모든 일은 다하고 빛이 나질 않는다며 푸념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행정법상의 난맥이 있다면 해법을 먼저 제시하고 당당히 정부를 설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금감원 직원으로서의 높은 급여는 포기하기 싫고 공무원으로서 누릴 권한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앞으로 정부의 공식 안이 나오고 국회 논의과정에서 어떻게 본래의 취지가 흐려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마도 금융위와 금감원은 또다시 국회를 기웃거리며 이전투구를 할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또한 어떤 내용이든 밥그릇 싸움이 본질인 은행법 개정안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분명하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가지 건의하고 싶다. 박 대통령은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의 임명권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낫겠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그분은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기 어려울 테고, 그리되면 그 책임은 임명권자인 대통령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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