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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올가미]① 0.01%가 내는 세금

  • 2014.01.22(수) 10:37

年 6천명이 1조7천억 상속세 부담…1인당 세금 '최고'
상속세율 내리면 '부자 감세' 역풍…선진국은 세율 인상

권력이나 재산을 후대에 대물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이다. 많이 누리고, 더 가진 사람일수록 욕망의 강도는 세다. 후손들 입장에서는 선대가 쌓은 부를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물려받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불로소득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때문에 상속에 따르는 비용은 그만큼 비싸다. 상속세는 전형적인 '부자 세금'으로 최고 세율이 50%에 달한다. 2000년 이후 한번도 세율을 건드린 적이 없고, 별다른 세법 개정도 하지 않았다. 여론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배우자의 유산 상속 지분을 늘리고 세금을 적게 물리는 상속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법이 바뀌면 평생을 함께 일군 배우자의 재산을 인정해주면서 이중으로 세금이 부과되는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정부의 상속법 개정 움직임은 고령화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자는 취지지만, 매년 되풀이하는 '부자 감세' 논란의 불씨도 함께 안고 있다. 2014년 상속세의 현주소를 통계와 해외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과 실제 상속자들의 세부담 변화를 조명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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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매년 새로운 조세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즐겨 사용하는 문구 중에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있다. 가급적 많은 과세대상을 통해 적게 세금을 걷겠다는 의미로 조세형평성을 강조해 세금 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목적이다.

 

지난해 세법개정안 발표 당시 논란을 일으킨 조원동 경제수석의 '거위의 깃털("세금을 걷는 것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상속세는 이런 개념들과 정반대로 작동한다. 거액의 자산가가 죽어야만 과세가 성립되는 만큼 세금을 내는 인원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세율은 다른 세목들보다 훨씬 높다. 세금 납부도 부(富)의 재분배 차원에서 고통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재벌가에서는 무거운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편법 증여를 시도하거나,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역외탈세를 저지르기도 한다. 상속세를 둘러싼 과세당국과의 숨바꼭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1만명 중 한 명만 낸다

 

상속세는 아무나 내기 힘든 세금이다. 22일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2년 상속받은 사람은 28만7094명이었지만, 실제로 상속세를 낸 사람은 6201명뿐이었다. 2012년 추계인구(5000만4441명) 대비 0.0124%로 1만명 가운데 한 명씩 상속세를 냈다는 의미다.

 

극소수에 불과한 납세 인원에 비해 세수는 묵직하게 걷힌다. 2012년 국세청이 걷은 상속세는 1조7185억원으로 전체 국세(203조원)의 0.85%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종합부동산세(1조1000억원)와 인지세(6000억원) 수입보다도 더 많은 세수입을 올렸다.

 

상속세 납부자 1인당 2억8500만원꼴로 세금을 부담했다. 직장인이 내는 근로소득세(1인당 124만원)나 자영업자의 종합소득세(1인당 178만원)와는 차원이 다른 세액 규모다. 부동산 부자들이 낸 양도소득세(1인당 1652만원)나 종합부동산세(1인당 413만원)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다.

 

세법에 정해진 상속세율은 과세표준에 따라 10~50%지만, 실제로 납부한 실효세율(산출세액/과세표준)은 36%로 집계됐다. 상위 1% 고소득자의 소득세 실효세율이 20% 안팎이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10%대 후반인 점을 감안하면 상속세 부담이 얼마나 높은지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 세율은 OECD의 두 배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각종 공제를 제외한 과세표준 30억원을 넘어설 때부터 적용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OECD 평균 26%보다도 두 배에 가깝게 형성돼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40%, 미국은 35%, 독일은 30% 수준으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은 50%의 최고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최근 전반적으로 상속세 부담을 늘리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정부의 세금 감면법으로 상속세 면세점을 높이고 세율을 낮추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상속세율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2007년 이후 꾸준히 상속세 공제 축소와 세율 인상을 시도했지만 난항을 겪어왔다. 현재 상속세율을 55%까지 높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영국은 물가상승에 맞춰 상속세 면세점을 인상하다가 2009년 이후 면세점을 동결하는 등 세부담을 높이고 있으며, 독일은 최근 5년간 상속세율을 10% 내외로 높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0년 상속세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한 이후 14년째 바뀐 적이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 해 상속세율을 내리는 법안을 내놨지만, 국회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최근 정부 주도로 배우자의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국회 심사 과정에서 '부자 감세'의 역풍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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